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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메시지 에세이49

나는 아빠가 진짜 싫다. 우리 집은 옥탑방이었다. 1층엔 국밥집이 있는 4층짜리 건물에 딸린 2층짜리 옥탑방. 나는 나름대로 이 집이 좋았다. 옥탑방이라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시선들도 있었지만 이 집은 위 층에 조그마한 테라스가 딸려 바람 쐬기가 좋았고 내가 맘껏 뛰다니며 춤을 출 수 있는 공간도 있는, 아주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이였다. 옥상에 들어오려면 제일 먼저 네 자리 비밀번호를 쳐야 했다. 띠띠띠띠-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시계를 한 번 확인한다. [am 1:24] 비틀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우리 집 문이 열린다. 비밀번호가 없는 여닫이문이었다. 앞에는 화장실이 있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 뒤에는 자고있는 오빠가 있었다. 아아, 정확히는 자는 척을 하는. 비틀거리며 들어온 아빠는 그 문을.. 2024. 3. 19.
터닝 포인트 그때의 기억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 열정이 생기고 의지가 불탔다. 내 인생의 변환점이 생겼다. 그날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기대하던 날 중 하나일 것이다.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부랴부랴 씻고 날이 추워 두꺼운 겉옷도 챙겨 입었다. 가방도 챙기고 밖으로 나와보니 시원 상쾌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들뜬 마음으로 멋있게 차려입으신 할아버지와 둘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하늘을 바라보니 예쁘게 구름도 피어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왠지 할아버지와 단둘이 밖에 나온 것은 정말 어릴 때 기억밖에 없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멋있게 걸어가시는 할아버지를 찍었다. 왠지 앞으로 할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기회는 흔치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정의되지 않는 오묘한 내 기분을 바로잡고 지하철을 타고 우리 학.. 2024. 3. 18.
케케묵은 대못 그때 기억나는 감정은 그저 무서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친 듯이 뛰어가는 것이었다. 뛰어가서 손이 전부 하얗게 변하도록 꽉 잡고 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에서 피가 흐르는 듯이 우는 것 뿐이였다. 나와 형과 누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4남매 중 막둥이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 사랑의 대부분이 어머니의 관심과 말 들이였지만 나는 내가 정말 이런 곳에 태어난 것이 축복받은 것 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제 말할 기억에서의 내 충격이 큰 것 같다. 우리집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싸우셨다. 말다툼의 빈도가 많아졌고 나는 그럴때마다 그저 부모님이 .. 2024. 3. 17.
반에서 꼴등이네 믿기지 않았다. 아주 행복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도 하면 할 수 있다고 그저 안한 것 뿐이였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1학기때 공부를 지지리도 안했다. 이 때 내 수학점수는 21점이였다. 코로나로 인해 거의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고 온라인클래스도 안하고 친구랑 만나서 놀기만 했다. 하고싶은 것도 없었고 하고싶다는 마음가짐도 없었다. 그저 생각없이 놀기만했다. 친구랑 미래에 대해 얘기하던 도중 같이 카페를 창업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흥미로웠기에 좋다고 했다. 일반고에는 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나는 제과제빵을 배우려고 조리과가 있는 특성화고를 다 찾다가 생활과학고등학교를 알게되었고 생활과학고등학교라는 꿈이 생겼다. 생활과학고를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었기에 1순위로 .. 2024. 3. 16.
추억이 음식이다 평소와 다르지 않던 어린 날의 어느 날 유치원으로 전화가 결려왔다. 엄마였다. 선생님은 엄마가 나를 곧 데리러 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불과 일주일 전에만 해도 만난 사람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7살 무렵 유치원이 끝나고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내일 할머니 뵈러 홍천에 갈 거야.”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평소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던 형과 나는 그날 저녁 들뜬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형과 나는 할머니에게 부침개를 해달라고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바삭하지도 않고 간도 슴슴한 할머니의 부침개가 어렸을 땐 왜 그렇게 좋았는지. 그렇게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형과 나는 계곡에서 진이 다 빠지도록 놀고 저녁을 먹은 다음 .. 2024. 3. 14.
극한의 것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우리 모두 극한의 것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것은 슬픈 감정, 기쁜 감정만이 아니다. 상황으로 겪게될 때도 있고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에도 있다. 체력적 한계라는 것이 주관적으로 극한의 요소 중 가장 평면적이고 간단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스포츠 클럽이라는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활동이다. 그래서 어거지로 시작하게 된 활동인데 평일부터 주말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활동하고 비가 오던, 눈이 오던, 해가 쨍하던 그런 부수적인 것들은 활동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만큼 열정적인 활동이었다.-물론 아이들의 의견과 주관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그만큼 선생님의 기대 또한 컸기에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후에는 그런 꾸짖음에 익숙해졌고 이런 고된 운동들 또한 익숙해..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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