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르지 않던 어린 날의 어느 날 유치원으로 전화가 결려왔다. 엄마였다. 선생님은 엄마가 나를 곧 데리러 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불과 일주일 전에만 해도 만난 사람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7살 무렵 유치원이 끝나고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내일 할머니 뵈러 홍천에 갈 거야.”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평소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던 형과 나는 그날 저녁 들뜬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형과 나는 할머니에게 부침개를 해달라고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바삭하지도 않고 간도 슴슴한 할머니의 부침개가 어렸을 땐 왜 그렇게 좋았는지. 그렇게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형과 나는 계곡에서 진이 다 빠지도록 놀고 저녁을 먹은 다음 할머니께서는 간식으로 부침개를 해주셨다. 부추, 당근, 양파, 오징어를 넣은 반죽을 할머니께서 부치기 시작하셨다. 기름은 넉넉히 둘러 부쳐지는 부침개의 기름 냄새는 나의 침샘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할머니는 갓 부친 부침개를 나의 입 속에 넣어 주셨다. 아삭한 부추, 쫄깃한 오징어가 부드러운 반죽을 만나 어우러져 너무나 맛있었다.
부침개 2장을 순식간에 해치운 나는 형과 마당에서 고무 딱지로 딱지치기를 했다. 형을 이길 순 없었지만 정말 재밌었다. 신나게 놀고 나니 시간을 벌써 잘 시간이 되어있었다. “너네 빨리 안자?” 엄마는 우리를 재우기 위해 이불을 깔았다. 하지만 우리는 할머니 옆에 붙어서 안자겠다고 계속 버텼다. 할머니는 우리를 도와주셨고, 할머니 옆에서 새벽까지 TV를 보며 늦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로 형과 나는 차에 탔다. 늦게 잠 든 우리는 차에서 계속 잤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과 다르지 않던 어느 날 유치원에 등원해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던 나를 선생님께서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어머니께서 지금 데리러 오신다네. 짐 싸서 나가자.” 평소와 다른 낮은 목소리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저 어렸던 나는 집에 빨리 간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엄마와 유치원을 나왔다. “엄마 우리 어디 가요?”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아...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나는 순간적으로 얼었다. 할머니가 타고있던 차를 대형버스가 옆에서 추돌한 것이였다. 불과 일주일 전에만 해도 나를 안아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어안이 벙벙했던 나는 장례식장에 들어가서 영정사진 안에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실감했다. 이제 우리 할머니를 볼 수 없다고. 나는 그 시점부터 계속 울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같이 울던 형이 나를 달래줄 정도였다.
나는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훌쩍거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점점 내 추억 속의 존재가 되어갔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 할머니의 납골당에 들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회상하고 있던 중에 엄마는 나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있던 신기한 얘기를 해주었다. 할머니는 평소에 할머니 댁에 놀러오라고 강요하는 분이 아니신데, 그날따라 이번 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하늘나라로 떠날 때가 오면 자신의 죽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듯이 우리 할머니도 아마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것을 미리 예감하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할머니가 해주시는 부침개를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할머니의 부침개를 흉내 내어 만들어 먹곤 한다. 종종 할머니가 해주신 그때의 부침개 맛이 나지만, 그때의 부침개를 느낄 순 없다. 포근한 분위기, 할머니의 미소, 내 입을 닦아주던 할머니의 손. 할머니의 부침개를 생각하며 나는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할머니가 그립다. 나는 아직 할머니가 보고싶다.
'감정 메시지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닝 포인트 (0) | 2024.03.18 |
---|---|
케케묵은 대못 (0) | 2024.03.17 |
반에서 꼴등이네 (0) | 2024.03.16 |
극한의 것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0) | 2024.03.13 |
그러다 갑자기 입을 맞췄다. (0) | 2024.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