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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메시지 에세이

나는 아빠가 진짜 싫다.

by 라이팅 매니저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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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옥탑방이었다. 1층엔 국밥집이 있는 4층짜리 건물에 딸린 2층짜리 옥탑방. 나는 나름대로 이 집이 좋았다. 옥탑방이라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시선들도 있었지만 이 집은 위 층에 조그마한 테라스가 딸려 바람 쐬기가 좋았고 내가 맘껏 뛰다니며 춤을 출 수 있는 공간도 있는, 아주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이였다.     

 

옥상에 들어오려면 제일 먼저 네 자리 비밀번호를 쳐야 했다. 띠띠띠띠-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시계를 한 번 확인한다. [am 1:24] 비틀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우리 집 문이 열린다. 비밀번호가 없는 여닫이문이었다. 앞에는 화장실이 있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 뒤에는 자고있는 오빠가 있었다. 아아, 정확히는 자는 척을 하는.     

 

 비틀거리며 들어온 아빠는 그 문을 연다. 탁- 불이 켜진다. 어둠밖에 없던 거실에 빛이 들어찬다. 오빠가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본 건 아니지만 아마 그랬을 거다. 아빠는 곧장 높은 계단 몇 개를 올라 2층으로 올라온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2층으로 올라오면 역시나 필사적으로 자는 내가 있다. 오늘은 2층 불을 켜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가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운이 좋으면 속아주고 운이 좋지 않으면 나를 깨운다. 오늘은 운이 좋지 않은가 보다.     

 

 아빠는 나를 깨워 이리저리 말을 늘어놓는다. 듣기 싫다.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노래방을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끈다. 비싸기만 한 노래방이 뭐가 좋다고. 나는 친구들과 가는 코인 노래방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노래방이 우리 아빠한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뇌로는 가기 싫다고 했지만 내 몸은 곧장 옷을 챙겨입고 있다. 새벽은 꽤 춥기 때문이다. 오빠는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도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없으면 아빠는 혼자였다.     

 

 밖으로 나가 도어락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간다. 으…. 역시 춥다. 노래방은 그리 멀지 않았다. 느긋하게 5분만 걸어가면 있었다. 큰길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면 노래방 입구가 있었다. 이젠 거의 단골의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 노래방 아줌마는 우리가 음료를 주문하기를 기다린다. 아빠가 묻는다. 뭐 마실래? 초록매실이요. 아빠는 자신이 마실 맥주와 함께 내 매실주스도 함께 주문한다. 노래방 아줌마는 주문을 받고 방을 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방 기계에 60분이 찍힌다.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줄줄이 불렀다. 아빠, 이럴 거면 나 가수나 시켜줘. 장난삼아 했던 말이다. 아빠가 술을 마셨을 땐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곤 했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내가 그냥 하는 말에도 오버액션으로 받아주었다. 다음 선곡은 이선희의 인연이라는 노래였다. 어렴풋이 티비를 보다가 들었던 노래가 머리에 익혀져 자연스레 내 애창곡이 되었다. 아빠도 내가 부르는 인연을 참 좋아했다. 그런 반응 때문인지 어릴 적 나는 내가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줄 알았다.     

 

 노래방 아줌마는 서비스가 참 후했다. 적당히 후해도 됐을 텐데. 30분, 10분, 10분…. 한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4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다. 이러다 노래방에서 아침을 맞겠다 싶어 아빠에게 얼른 나가자고 했다. 또 한 번의 서비스에, 마지막으로 한 곡만 부르고 나가자는 말에 콜을 외쳤다. 적당히 비위를 맞춰야 얼른 집에 가서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 7분을 뒤로 하고 우리는 노래방에서 나왔다.      

 

 노래방을 나서면 그 옆엔 세븐일레븐이 있었다. 좁지만 등교 시간에는 남고딩으로 붐비는 곳이었다. 아빠는 신라면 작은 컵과 카스 한 캔을 손에 쥐고 카운터로 향했다. 아빠는 술이 들어가면 씀씀이가 커졌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날엔 내일 학교 가서 먹을 것과 지금 땡기는 것, 그리고 평소엔 생각도 안 하는 오빠 거까지 챙겨 카운터로 갔다. 계산을 마치면 나는 내가 고른 것들과 카스를 들고 밖 테이블로 가서 앉는다. 아빠가 뜨거운 물을 부어 뜨뜻해진 신라면 작은 컵을 들고나온다. 이 아저씨 신라면 되게 좋아하네...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신라면을 먹었다.     

 

 아빠가 운을 뗀다. 오늘도 뭔가 일이 있었나 보다.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모든 순간 술을 놓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빠의 장단에 맞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한다. 별일 없었지만, 그냥 뭔가 있었던 거 마냥 거추장스럽게. 아빠는 가끔은 울고 또 가끔은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런 부류의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나는 그 말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이상하게 아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난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아빠와 나는 꽤나 애틋한 사이였나…싶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슬슬 아빠도 잠이 쏟아진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후다닥 치우고 집으로 간다. 다시 계단을 오른다. 숨이 가빠 헉헉 댄다. 맨날 올라도 맨날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밀번호를 치고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는 담배 한 대만 피고 들어가겠다며 나를 먼저 들여보낸다. 들어오니 이번엔 진짜 자고 있는 듯한 오빠가 보인다. 재수 없는 놈. 오빠는 꼭 자기 혼자 빠져나간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고 포근한 이불 위로 누우면 아빠가 올라와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다. 모순이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못 자는데. 아무튼 나도 아빠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눈을 감는다. 나는 아빠가 진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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