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들어 가 사춘기를 겪으며 그 어느 중학생들처럼 나 역시 외모와 친구관계가 내 인생에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내 미래의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할 여유 없이 많은 일들과 감정들을 겪었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한 번 몸으로 배운 건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라는 가치관에 의한 지원으로 나는 이것저것 많이 몸으로 겪고 배웠다. 그래서 미래의 대한 고민의 운을 뗐어도 어렸을 때부터 키워왔던 재능으로 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고민하게 되면서 내가 키워온 재능과는 전혀 다른 분야, ‘미용’ 이라는 분야에 진로를 잡게 되었다.
다행인 지 나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던 아이였고 나는 내가 뭐든 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들어온 미용고등학교에서의 1학년은 불행이었다. 난 아직 인간관계가 무서웠고 재밌었다. 다른 아이들이 헤어 자격증을 따려고 미친 듯이 노력할 때 나는 헤어가 잘 맞지 않아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정말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막상 몸으로 겪어보니 맞지 않음을 깨닫고 미용에 건 최소 3년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1년은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떠나보내버렸다. 아마 이 시간은 내 평생 가장 후회되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떻게든 친구들과 벌린 격차를 좁히려는 원동력이 되었다.
2학년 때 메이크업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내 원래 전공은 헤어로 생각하고 왔지만 맞지 않아 절망하던 그 때, 어렸을 때부터 미친 듯이 좋아했던 미술이 메이크업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흥미 역시 있었다. 선의 굵기와 색조, 깔끔한 표현들을 보는 게 나에겐 쾌감이었고 내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았다. 이어 학원까지 다니게 되었다.
국가 자격증 수업을 결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인생 첫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아직 메이크업 수업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게 맞나 싶었지만 경험이다 생각하고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내가 나간 대회는 국제대회였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가한 매우 큰 대회였다. 기대감을 저 버리고 그냥 정말 경험이라고만 생각하고 열심히 보고 임했다. 시상식이 다가왔고 예상과는 달리 금상을 받게 되었다. 그 직후에 나간 대회에서도 금상을 받았고, 그 덕에 난 자신감과 더 큰 열정을 얻게 되었다.
그 후론 기본적인 국가자격증 과정부터 심화 과정인 민간자격증(판타지, 일러스트, 바디페인팅, 아트마스크 등)까지 욕심내어 메이크업 관련 자격증은 다 따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선생님께 대회 제의를 받았다. 그러면서 우리 학원이 날 에이스로 생각하고, 내 꿈인 강사까지 서포트 해 주시고 보조 강사로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게 키워주신다는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이번 대회는 1등 상인 그랑프리를 노리며, 웨딩 환타지로 대회 출전을 하게 되었다. 국가로 출전했던 전에와는 달리 헤어오브제나 웨딩 드레스도 준비하고 만들어야해서 금액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손이 많이 갔다. 몇 달을 대회를 위해 준비했고, 드디어 대회날이 왔다.
역시 이번 대회도 국제대회였고, 그냥 시간만 나오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그간 들인 정성이 헛되지 않은 게 현장에서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번 대회에서 당당히 그랑프리를 받았다. 하나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던 날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날 이렇게 성장시켜준 시간들이었다. 힘들어도 끝까지 버티는 것, 그러다보면 1학년 때 내가 꿈꾸던 모습을 2학년 때 이룬 것 같이, 꾸준하게 열정을 가지고 임하면 뭐든 잘 될 것이다. 앞으로도 난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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