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열여덟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학년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 벌써 성인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딱히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하거나 방방 뛸 정도로 기뻤던 기억은 없다. 기억을 못하는 걸 수도 있으나,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감정이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올해는 나의 감정이 많이 동요하는 해인 것 같다.
올해에 들어와서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과 문화생활 그리고 친구들의 만남조차 뒤로 한 채 오직 공부, 공부 또 공부만을 했다. 내가 공부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공부 말고 할 게 또 무엇이 있다고. 물론 나는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다른 해야 할 것이 많지만, 나는 공부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음... 사실 잘 맞다는 것 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공부뿐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여름방학, 이제 곧 있을 고등학교 원서접수를 어디로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해외에 어느 쇼핑몰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이자 CEO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아!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토대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고, 딱히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나마 관심이 많았던 ‘패션’이라는 전공을 배우기 위해 지금의 고등학교 패션과의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하게 된 나는 모든 게 새로웠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 나는 모든 게 설렜고, 모든 것에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 갔다. 적응은 금방 할 수 있었다. 새로 만난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게 되어서 기뻤다.
하지만 어느덧 열여덟이 된 나는 첫 시련을 맞았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던 전공 수업은 점점 흥미가 없어지고, 당차게 외쳤던 나의 꿈은 길을 잃고 방황 했다. 내가 결정했던 ‘패션’이라는 전공에 대해 “과연 내가 이걸 정말로 하고 싶어서 정한 걸까? 너무 다급한 결정이었나?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지?” 등 수많은 의문이 들었고, 원하는 걸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는 점차 사라져 갔다. 시간은 점점 흘러만 갔고 나에게 생각할 시간도, 다시 결정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속절없이 흘러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대학’이었다. 그렇게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대학에 가야겠다는 압박감 때문에 성적에 목매게 되었고, 모든 과목을 상위권으로. 내가 아주 부족했던 과목 또한 무리해서 성적을 올리려 했다. 평소에 잠이 많던 나는 잠은 죽어서 잔다는 생각으로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하루에 평균 4시간을 자며 공부했다. 마치 스스로와 끝나지 않는 마라톤을 뛰듯이. 오롯이 앞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나의 지식을 쌓고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시험을 위해서 하는 공부.
“그런 방식으로 공부하면 성적이 잘 나올까?”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답은 Yes이다. 물론 성적은 잘 나온다.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학교 시험 정도는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공부란 삶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즉 공부란 우리가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꼭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다. 이처럼 사는 동안에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공부인데, 나는 그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직 성적을 위해서, 나에게 맞지 않는 공부 방식임을 알면서도 불안정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시험을 쫓아갔다. 배운 지식을 다급히 머릿속에 넣기 바빴고, 시험이 끝난 후에는 다음 시험을 위해 배운 지식은 모두 잊어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익히기 바빴다.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불안감에 휩싸였던 나는 더욱 자신을 닦달하며 공부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많이 지쳤다는 것을. 하지만 이것만이 내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내가 다다를 종착역이 어딜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달려갔다. 결국 나는 “한계”라는 역에 다다랐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한들 마음이 불안정하다면 다 쓸모없다.” “마음의 소리가 강한 자는 그 어떤 시련이 와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후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그동안 공부했던 교과서, 학습지, 시험지를 정리하며 메모장에 찬찬히 적어본다.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소박하지만 이루고 싶었던 꿈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이제 난 시련에 맞서는 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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