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꽃이란 조금은 어색한, 맑은따뜻함 같다. 아직은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다정함, 따뜻함. 꽃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꽃을 받고 좋아할 상대방의 모습을 생각하며 쭈뼛쭈뼛 향기 나는 꽃집에 들어서 그 순간의 어색함을 견디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가장 예쁜 향기 나는 꽃을 고르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그 예쁜 마음을 선물 받는 것이다. 나에겐 꽃은 그런 따뜻함이다.
요즘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연애를 하다 보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요즘 내 삶에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 감정인 것 같다. 누군가를 이렇게나 진심으로 좋아하고, 보고 싶고 생각나는 것 그 계기에 있던 사물 4가지 중 먼저 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어떤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남자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꽃선물을 한다”라는 그런 터무니없는 글이다. 나는 그 글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언제 꽃을 받아봤더라? 아마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식 이후로 꽃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때 뭔가 마음 한 켠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연애를 하면서 그렇게 남들 다 받아 봤다는 꽃 한 송이 못 받아본 게 뭐 이렇게까지 씁쓸한 기분을 내게 하는지 정말이지 의문이었다. 뭔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 사람이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항상 만났던 친구들이 한 번씩은 다 물어봤던 것 같다. “**야, 넌 꽃 안 좋아해?, 꽃 사줄까?”그럼 나는 항상 “응? 무슨 꽃이야~ 그 돈으로 같이 맛있는 거나 하나 더 사 먹자~”그럼 보통 다 “그래, 그러자~”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꽃의 의미는 따뜻함이었는데 , 떠먹여 주듯 꽃을 받는다면 그 따뜻함이 뭔가 식어버릴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꽃에 대해 이제는 받고 싶다 거나, 딱히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없었다.
평소처럼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추척추적 내리는 날씨에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아마 그날도 평소처럼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가고 밥을 먹고 집을 가는 길이었다. 진짜 순간이었다. 은서야 잠시만 우산 좀 들어줘, 그때 나는 응? 뭐지 싶었다. 그때 비를 뚫고 후다닥 꽃집으로 들어가는 남자친구를 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서 나랑 제일 잘 어울리고 제일 이쁜 꽃이라며 사다 준 보랏빛 장미꽃다발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마 이런 거였던 것 같다. 내가 선물 받고 싶었던 다정한 꽃이.
뭔가 엄청 따뜻했다. 돌연... 그래서 물어봤다. 갑자기 꽃은 왜....? 그러자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남자친구는 대답했다. 아까 지나가다 봤는데 진짜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다고, 진짜 잘 어울린다면서 말하는 남자친구가 너무 예뻐 보였다.
이제까지 나는 꽃이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을 받고 싶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마음이 따뜻함으로, 그 순간의 다정함으로 채워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보라색 장미 꽃다발이, 비를 뚫고 나한테 뛰어오는 네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렇게 내 열여덟의 순간이 채워졌다. 매우 따뜻하게. 무언가 얘랑 있는 순간은 순간순간이 영화 같기도 청춘드라마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내 연애는 라면 같았다 패스트푸드 랄까.. 왜 때문인지 보통 2달 내지 3 달이면 마음이 식어버렸다. 내가 먼저일 때도 상대방이 먼저일 때도 있었다. 그냥 당장 내 옆에 없어도 슬플 것 같지 않고 나도 상대도 서로에 대해 그렇게 깊게 알고 있지도 알 수 있는 마음에 크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항상 2프로씩 부족했고 서툴렀다.
이게 온전히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나랑 만나는 친구들이 하나같이 나랑 안 맞는 건 내가 유난스러워서일까? 그래서 이번 연애도 그렇게 나의 유난스러움에 지칠 것이라 생각해서일까? 처음 겪는 따뜻함과 다정함에 놀랐던 나의 그런 유난스러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이 친구를 만나며 느낀 새삼스럽고 유난스러운 것에는 꽤나 많은 것들이 있다.
가장 별 것 아닌 것부터 생각해 보자면 난 손에 짐이 들린 적이 없었다. 순간순간 당연하다는 듯이 가져가는 내 가방과 짐들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지만, 이 사소함이 나를 대하는 마음은 어느 것보다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항상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 10분씩 먼저 은서~나 몇 번 출구 앞이야~천천히 와 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항상 우선순위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난 너밖에 없잖아~하며 우습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묘하게 마음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매번 우리가 헤어지는 시간은 11시 30분.
10시에 헤어지자 다짐하고 11시에 헤어지자고 다짐하는 매 하루하루에도 매번 우리가 헤어지는 시간은 11시 30분이다. 항상 10분만 더 있다 갈까? 다음 버스 탈까? 라며 미루고 미루다 항상 우린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매번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벌써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느껴졌다. 아직 한번 싸워보지도 아니 다투어 보지도 못한 우리가 맞추어갈 나날들이 아직 한참 남았다고 느껴졌기에 우리가 이루어 나가는 순간순간 과정과정이 이때만 느낄 수 있는 순간임을 알기에 너무도 따뜻하고 소중했다.
이 친구는 나에게 항상 말한다. 처음 본 날 이후로 정말 진심으로 대하기로 소중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나는 이런 표현들이 아직까지도 너무 서투르고 닭살이 돋는다. 그렇지만 이런 사소한 말을 새삼스럽다 느껴지는 것들을 ‘나여서, 나라서’라고 칭하며 뱉어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매번 고마움을 느낀다. 어딜 가든 안쪽 자리를 내어주고 영화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맛에 팝콘을 사서 기다리고, 비어 있는 물잔을 채워주고, 날씨가 춥다며 따듯하게 데워둔 핫팩을 건네는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 말고는 뭐라 표현할 감정이 없었다. 잠깐 뜨거워졌다 빠르게 식어버리는 것이 아닌 정말 오래오래 따뜻할 그 무언가 느껴졌다. 아니, 매 순간 느껴진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렇게 순간순간 사랑받고 내가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야 내가 조금은 좋은 사람을 만나 성숙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유난스럽게 서툴렀다고 합리화하던 과거의 나에게 한 번쯤은 이야기해 주고 싶다 유난스럽고 서툴렀던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주는 사랑이 아닌 받는 사랑에도 익숙해질 수 있었던 거라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런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 거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몇 가지 없단 것도 알려주고 싶다. 먼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을 것. 이건 연인이 아니어도 나라는 사람이 매우 가벼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태도가 오히려 안 좋은 결과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느꼈다. 두 번째로는 이미 지나간 일은 잊는 것이 좋다. 과거를 들추기보단 앞으로의 행복할 미래를 상상하며 같이 그려 나가는 것이 훨씬 이상적인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 느낀 것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애를 하면서 편해진 것을 사랑이 식어버렸다고 나를, 또는 상대방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연애 초반과는 설렘도 덜하고 두근거림도 줄었다 해서, 사랑이 식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편안해지는 시기는 반드시 오고 그것이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자각하고 행동한다면, 누군가를 그 자체로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 친구와 다른 길을 걷게 되어도, 미래의 내가 돌아봤을 땐 또 서툴렀던 연애라고 생각이 들어도, 지금 순간과 앞으로 그려나갈 하루하루가 난 너무 행복한 요즘이다.
학생이어서, 서툴러서 느낄 수 있는 이 감정을 마음껏 느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으로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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