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에서 화가 엄청 난다거나, 기억에 크게 남는 일이 많이 없었다. 작게 작게는 기억이 남았지만 에세이를 써낼 만큼의 내용을 적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했던 일이라도 나열해볼까 싶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댁에 갔다 나오면 항상 보이던 무지개빛 하늘이라던지, 가장 오래된 친구와 졸업식날 편지를 교환했던 일이라던지, 어릴적 여행에 가서 개구리를 손에 쥐고 있던 개구진 모습이라던지, 그런 사소한걸 생각해보니 하나가 딱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무 재미도 없었던 인생에 들어온 하나의 생명을 말이다.
그날도 생각해보면 다른 날과 별다르지 않았다. 평소처럼 청량한 하늘에, 평소처럼 할 일을 해야했기에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친구와 만나 예방접종을 맞고 나와 길을 걸어다니다 밥을 먹고 우리집 주변에서 놀고있었다. 그러다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다급한 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박스 좀 찾아서 집으로 빨리 올수있냐고, 그래서 일단 집으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체 말이다. 그러다 다시 전화가 울리더니 언니가 박스 필요없으니 얼른 집으로 오라는 말에 정말 빨리 뛰어갔다. 친구와 함께 집에 들어서니 작은 방에 모여있는 가족들에 그쪽으로 다가가니 작은 생명체가 눈앞에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때 그 작은 아기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신기하고 날아갈 듯이 좋았던 기억뿐이었다. 그날의 날씨, 그날 했던 말, 그날의 내 마음이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할 정도이다. 하루만 지나가도 전날의 일을 기억하기 힘든데,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한다는건 그날 그 아이와 만난 것이 나에게 정말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사람에게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된 날이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 아이를 데려오기 얼마 전부터 언니가 계속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엄마에게 칭얼거렸다. 당연히 다른집 부모님들과 다를 것 없이 절대 안된다고 거부를 들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투정이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각종 유기동물 사이트에 유기 된 고양이들이나 아기 고양이들을 찾아본다던가, 동네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찾아다니며 간식을 챙겨주러 돌아다녔다.
그날도 그랬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집 창문을 타고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언니가 내려가보니 무성히 자란 넝쿨 사이로 아기 고양이가 끼어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 아기고양이는 주변에 어미가 먹이를 찾으러 잠깐 다른 곳에 가있을수도 있는데, 그렇다기엔 너무 지저분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기에 최대한 빨리 데리고 왔다고 했다. 당연히도 우리집은 애완동물을 한번도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와 언니가 펫샵에 가서 빨리 필요한 물건을 사오는 동안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처음이었다. 다 큰 고양이는 많이 봤어도, 아기 고양이는 처음 봤었기에 그냥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었던 것 같다. 바깥 환경에서만 살던 고양이였고, 또 어미가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그냥 계속 울고, 주변을 관찰하려는 듯 계속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얼 해주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엄마와 언니가 돌아와서 최대한 빨리 씻기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나서 이름을 생각해봤다. 공책에 써가며 서로 괜찮은 이름이나, 지어주고 싶은 이름들을 나열해 보았지만 도저히 괜찮은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나는 단어들을 나열하다가 문득 ‘오로라’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꽂혔고, 결국 그 이름이 되었다. 관련성 1도 없어서 한창 친구들한테 얘기해주면 어머님 성이 오씨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처음 만나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진료도 해보니 고양이의 특성 중 하나가 몸이 약하거나, 장애를 가진 새끼는 버리고 가는 습성이 있는데, 로라도 새가슴에 건강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서 버려진 것 같다고 병원에서 얘기해주셨다. 그걸 듣고 보면 운명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항상 로라를 통해 생각한다. 내가 18년 인생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그날의 감정, 온도, 날씨 전부를 기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날 중 하나를 이렇게 소개해보았다. 특별한 하루가 아니였음에도, 그 아이 하나로 전부를 기억해서 특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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