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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내 꿈을 위한 1보 전진을 시작했다. 어찌 할 줄 모르겠다..감독관도 옆을 지나가다 멈춰선다,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며 몸과 나의 뇌는 서서히 굳어버렸다..당장이라도 뛰쳐나오고 싶다.어떡하지.. 포기 해야 할까?너라면 어떡할래? 나의 우당탕탕 실기 이야기.,시간은 중학교 2학년으로 흘러간다,,내가 그 일을 겪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다,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했던 나는 수업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만 했었다.지금 생각하면 참 철 없는 행동이었다,아무튼 그렇게 게임만 하던 나를 정신차리게 해준 사건이 있다, 2학년 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집에서 게임을 하던 나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반 친구의 전화 였는데,그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아무튼 전화를 받은 나는 뭐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게임이라고 답했다 그.. 2024. 3. 27.
무너진 케이크처럼 내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우리 팀 디저트 케이크가 무너졌다. 한 달 반의 고생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무너진 케이크처럼 내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그날은 내 인생 첫 대회날이었다. 드디어 대회날이 되었다. 버스에 짐들을 실어 넣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긴장한 탓인지 1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밥도 안 들어가고 잠도 안 왔다. 사진이라도 찍어서 기분전환을 하려 했지만 긴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멍만 때리다가 드디어 대회장에 도착했는데 내리자마자 충격을 먹었다. 대회장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엄청 기대했는데, 대기시간 때문에 길에서 자리를 깔고 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대회장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대회장이야.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은 채 바로 전시 준비를 했다. 책상도 없이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음.. 2024. 3. 26.
난 너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아 너가 죽으면 난 어떡하냐고! 난 너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아!! 지금 죽으면 안된다고!! 나는 외쳤다. 외치며 너에게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말할수록 눈물이 고였다. 몸은 떨렸다. 그래도 통화를 끊지 않기 위해 너를 먼저 달랬다. 그렇게 얼마 후, 응급차와 구급대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너와의 통화는 끊겼다. 유치원에서부터 봤던 친구였다. 같은 학교를 다니지는 않지만 아직도 연락하며 잘 지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부할수 있는 애다. 이 친구와 전화 할 때 마다 나는 하루 중 가장 재밌고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중학교때 친구는 가끔 가출을 했었는데 거의 그 이유는 엄마와 싸워서였다. 하지만 보통은 금방 해결되고 집을 잘 들어갔다. 어느 날 내가 게임을 할 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때 시각은.. 2024. 3. 25.
내가 나가서 지면 어쩌지? 가 사는 동안에 가장 큰 무대였고 나에게 가장 큰 고비였다. 링에 올라와서 상대방이 올라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너무 긴장하였고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몸이 뜨거워졌다. 시작 종 소리가 울리고 내 귀에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건 오직 상대방 눈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주먹이 굳어있었고 나는 내가 답답했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중1 때 엄마가 추천으로 운동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어린 나로서 혼자 운동을 다니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에 친구가 다니고 있던 무에타이 운동장에 상담하러 갔고아서 관시각장애인께서 6개월 동안 다니면 기본 기초와 기술을 다 배울 것이라 말하여서 한 번에 6개월 치를 끊었다. 친구와 함께 다니니 나름 재미있었고 나한테도 잘 맞는다고 생각.. 2024. 3. 25.
고작 6천원. 그 메시지를 삭제했지만... 몇 년만에 그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6000원을 빌려달라고, 난 그 메시지를 읽고 황당하고 이해가 안 되고 한 편으로는 걱정했지만 어느 한 구석에는 공허하고 우리 둘의 사이가 왜 이렇게 멀어졌나 싶었다. 내가 고작 6000원 짜리의 존재가 된 거 같은 기분에 슬펐고 공허했다. 그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관계였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그 친구와 보내고 일주일이면 일주일을 모두 그 친구와 지냈으니까, 그만큼 그 친구와의 관계는 돈독하고 너무 아꼈었다. 서로가 거의 삶의 일부였으니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모두가 말하는 청소년의 사춘기라는 시절, 아주 작은 사소한 거에 신경쓰고 아파하는 예민한 시절이 왔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서로 힘들어하고.. 2024. 3. 24.
엄마는 그 한겨울에 밖으로 나가 뛰어다녔다. 지금은 좋아하지도 많이 먹지도 않는 사과라는 과일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과일이다. 사과를 먹다가 사과씨를 뱉어내다 보면 나는 항상 같은 추억을 떠올린다. 이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항상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사과가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사과라는 단어를, 사과의 맛을 잊을 수 없는 만큼 나에겐 이 기억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과 같은 추억이다.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떫은 그 맛처럼 이 기억이 달콤하고 떫은 나의 마음, 미안한 나의 마음이 함께 한다. 그 당시에 흐린 눈으로 내 옆에 있던 그림자를 바라보자 엄마가 앙상한 사과 꼭지를 베어 물고 있었고, 먹을 것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사과 꼭지를 베어 무는 엄마는 입에서 사과씨를 뱉어냈다. 그 사과씨를 보자 왜인지 마음이 쓰라렸다. 그때의 그 아픔은 정말 ..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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