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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핸드폰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어머니랑 아버지가 싸운 뒤 갑자기 어머니가 사라지셨다. 그래서 아버지께 어머니가 어딨나요. 물어봤지만,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어머니를 찾다가 저녁에 울면서 자던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여서 받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전화를 받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잘 지내냐고 물어봤을 때 눈물이 왈칵 나왔다 어디 있냐고 했을 때 어머니는 대구에 있다고 했다. 그때 어머니가 잘 지내고 있으면 보러오겠다고 했다 지금은 바빠서 못 보지만 나중에 보겠다고 해서 그때 핸드폰을 온종일 쳐다보고 있게 된 것 같다. 나에게 핸드폰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운동할 때 노래를 듣게 해줘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음과 동시에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 2024. 4. 3.
성공한 미용사 즐거운 미용사 ★ 질문 : 선생님은 즐기면서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식으로 즐겼는지 들려주실수 있을까요? 대답 :저는 중학생 때 학교에서 임선생님이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 라는 학교와 용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미용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던 와중 부모님도 미용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이때였던거 같아요 그순간부터 미용사라는 꿈을 꾸었던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여러 가지의 미용을 배웠죠 이때는 후회도 많이 했던거 같아요 내가 왜 미용을 하고있지 하고요 그래도 꾸준히하다 보니까 후회도 사라지고 즐겼던거 같아요 그렇게 학교를 졸업을 하고 21살에 군대를 다녀온 후 21살에 미용실에 취직을 했어요 그렇게 일을하고 일도 배우고 미용도 배우며.. 2024. 4. 2.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방 어느 날, 한 연락이 왔습니다. 저에게 옅어져가던 사람에 관한 연락이였고 그 사람의 죽음을 담은 연락이였습니다. 그 연락 이후 그동안의 제 행동이 후회스럽기도, 미안하기도, 슬프기도,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때,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던 때, 호기심에 들어간 그곳에서 저에게 한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사람은 울고 있었고,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었으나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이 힘이 되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었기에 그저 그 사람의 옆에서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다시 찾아간 그곳에는 또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저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 사람도 저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날 함께.. 2024. 4. 1.
개천에서 용났다 ★ 질문 :미리 전해 받은 18살 때 쓰신 버킷리스트를 봤더니 1순위 목표가 사업 이시던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대답 :제 목표는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해서 연 매출 100억을 달성이였어요 솔직히 처음엔 현실성 없는 허망한 꿈이라고 느꼈는데 지금 여기 그걸 달성 해서 여기 나오게 되었네요.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미용을 전공했던 사람이였어요. 그래서 원래는 살려서 취업을 하고 그 분야의 탑을 먹는게 꿈이였으나 1학년을 경험하고 나니 생각보다 현장에서의 일은 저랑 안맞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화장품 공학에 관심을 갖으며 화장품 개발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전 진로를 변경을 하고자 진로 상담을 받아 선 취업 후 진학 제도를 알게되었어요.. 2024. 4. 1.
난 정말 괜찮았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밤이 무섭다. 모든 하루가 끝나고 깜깜한 밤이 점점 깊어져 갈 때, 깊어져가는 밤과 함께 내 생각도 깊어져간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잠은 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더욱 깜깜해지는 밤에 세상에 혼자 남은 것처럼 느껴져 무섭다. 그래서 침대에 가득한 인형들 사이에 파묻혀 살아있지도 않은 인형들에게 나를 껴안아달라고 나를 위로해달라고 중얼거렸다. 눈물이 났는지 안 났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힘들었다는 거였다. 내가 힘들 때를 알아차리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중학교 때였다. 매섭게 몰아치는 한겨울의 바람이 우리의 집에도 들이닥쳐왔다. 부모님의 이혼은 아주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이었다. 근데 사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던 것 같다.. 2024. 3. 31.
나는 슬프긴 했지만 눈물을 참고 있었다. 할아버지 시신을 화장하시기 전 우리가족과 친척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2021년 5월 21일 할아버지께서 암투병을 하시다가 그날 저녁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다. 불과 일주일 전 병문안을 갔었을 때 나를 못알아보긴 하셨으나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빼고 다음날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갔다. 그 때의 나는 정말 철이 없게도 학교를 3일동안 뺀다는 것에 정말 좋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놈인거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학교를 뺀다고 좋아하다니..... 장례식장에 우리 가족이 도착 하였을 때 다른 친척들이 먼저 도착해 있어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밝지? 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생각해..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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