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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메시지 에세이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너를 응원해 줄게

by 라이팅 매니저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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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결과를 받은 거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간 차곡차곡 누적되어 나도 모를 새 한가득 쌓인 스트레스가 연약한 유리병이 깨지듯 머리 밖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막강했던 시험이 끝났다. 두렵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빨간 색연필을 들었다.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닌 한 종이가 나에겐 항상 돌아오는 순간마다 거대할 정도로 커 보였다. 실은 갈기갈기 찢으면 부스러기가 되고 마는 연약한 물체인데.      

 

직선과 곡선을 종이 위에 새기는 과정을 건넌 후 나는 어쩐지 허망하고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공부하는 데에 좀 더 시간을 쓴 과목보다 시간을 덜 사용한 과목이 점수가 더 높게 나온 탓이었다. 어쩐지 쉽다고 느껴졌더라는 건 다 내 착각이었나 보다. 이래서 자만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나 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문제를 조금 더 세심히 살피지 않은 나의 잘못인데. 분한 기분으로 글자들이 빼곡한 종이를 바라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눈 앞의 숫자를 믿지 못하다 사실을 수긍한 후에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머지않은 1년 후에 취업을 나가는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대학을 결정하고 진학을 해야 하는데. 조리 쪽과 그다지 맞지 않는 나로서는 다른 길로 나아가리란 선택을 했다. 어쩌면 나의 모든 성적을 결정지을 마지막 시험이 고작 한 회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점수를 받다니. 얼마 남지 않은 기간과 마주하자 그제야 현실 직면이라도 하듯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연한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진학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이름 있는 대학 못 가면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던데. 그와 함께 괴거의 내가 왜 그랬는지, 하는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점에서 만나 충돌하고 튕겨져 나가 맞물리지 않은 채 복잡도를 상승시켜 머릿속을 어지럽게 흩뜨려 놓았다. 그렇게 며칠.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렇게 가만히 생각해 봤자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는가. 결국 나를 갉아먹는 행동일 뿐이다. 별 도움되지 않는 우울한 생각을 그만두고 남은 기간이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자고 생각했다.      

 

한 달 전 즈음 엄마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우선, 내신으로는 힘들 것 같아 함께 수능 공부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혼자 생각했을 당시 학원에 다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얘기를 몇 번 더 나누자 요즈음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원에 다녀봤자 쉬이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엄마가 말하기론 따라가기 힘들 거라고. 혹 모르는 개념이 있어도 모두 모여있는 한 공간 내에서는 내가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 할 것 같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며칠 전 얘기를 다시 나누었을 때 경제적 비용이나 그런 몇몇 것들을 생각했을 때 학원을 다니는 대신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리 말씀드린 후 몇 번의 얘기를 더 나눈 뒤 천천히 강의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늦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내 얘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 몇몇은 분명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시작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더군다나 1학년 땐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아간 건지 그때의 성적을 확인하면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출발점에서 시작해 땅에 발을 딛어 도착점에 다다르는 속도가 늦든 빠르든 중간에 휴식을 취하든 취하지 않든 계속해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던 멀게만 느껴지던 도착점을 차츰 시야에 담을 수 있게 되고, 모든 사람은 결국 도착점에 다다를 수 있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1등만을 주로 바라본다. 첫 번째를 나타내는 1이라는 숫자에 동경을 갖고 쟁취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력한다. 1등을 하면, 빛나는 사람 같아 보이니까. 언젠가부터 1등은 좋은 것이라고 각인이 되어 있어서, 누구나 1등을 거머쥐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달리기 시합에서 꼴등과 1등이 있다면 사람들은 꼴등을 비판하고 저렇게 뛰어서 도착할 순 있는 거야? 하고 부정적인 말들만을 에둘러 내뱉곤 한다. 노력은 재능을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솝 우화에 실린 이야기 중 하나인 토끼와 거북이에서는 당연시 토끼가 이길 거라고 여겼던 모두의 예상을 깨고 거북이가 승리를 거두었다. 누구에게나 무시를 받아도,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을 듣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으리란 마음만 지니고 있으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언젠가 분명히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다.      

 

난 느려도 너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응원해 줄게. 

언제나 너의 편이 되어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도,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 줘.      

거북이는 늦지 않았다. 저 자신의 속도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그 결실을 보란 듯이 거둬내었다. 나는 거북이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영 느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마음을 지닌 채 나아가는 사람이. 조금 늦게 출발선에 섰지만 작은 행동으로부터 바뀔 나의 미래가 기대된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땅을 딛고 일어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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