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날이다. 불안감과 허무함 그리고 해보자의 친구들이 나를 반기는 날, 그리고 시험의 결과가 나오는 목요일. 그날도 마찬가지로 오늘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들어간 다음 로그인을 하고 나서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의 결과를 눌러본다. 열 때마다 처음 열었던 순간처럼 나는 불안감이 온다.
일 년 중 몇 번의 목요일은 나를 두렵게 한다. 아니 나를 허무함이라는 친구랑 만나게 한다. 그날의 일주, 이주 전에는 불안감이라는 친구가 나를 떨게 하고, 슬프게 한다면 그날 당일에 오전 9시가 된다면 허무함이라는 친구가 오기 시작한다. 허무함이란 감정은 슬픔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자신 또는 상대방에게 화나거나, 아쉬움이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친해지게 되는 친구이다. 이 친구랑은 절교를 하고 싶을 정도로 싫은 친구이고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친구를 같이 끌고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허무함의 친구는 나한테 안 떨어진 다음 다시 오전 10시에 나를 불안감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불안감은 나의 성경, 심정을 부정적으로 만들고는 자신의 일이 아닌 듯이 유유히 떠나는 그런 친구이다. 나는 그 둘이 너무 밉고 같이 있기 싫지만 나의 꿈과 앞날에는 허무함과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게 되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오늘도 나는 이 친구를 데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한다.
불안감이 허무함과 같이 온 다음, 허무함은 열등감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올려한다, 그치만 나는 열등감과는 절대 친해지고 싶지도 아는 체 하기도 싫은 친구이기에 오늘도 그 친구를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다짐을 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내 친구인 익수기를 데려가려고 한다. 이 친구를 허무함과 불안감 친구들에게 나의 익수기를 소개하기도 싫고, 그 셋이 친해지는 것은 내가 피눈물이 날 것 같아 오늘도 나는 익수기를 숨긴다.
그리고 나한테는 또 한명의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해보자’ 이다. 해보자는 내가 그들에게 아픔을 당하고 마음이 불안정 되었을 때 나는 안정이로 데려가는 그런 친구이다. 내가 그들에게 잡혀있을때 그들의 사이에 껴서 나를 돕거나 그들이 없을 시간에 나를 격려 해주고 나를 더욱 강력하게 해주는 친구이다.
그 친구가 해준 말들 중 제일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말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빨리 익숙해지고 빨리 강한 어른이 되고 싶을지라도 너는 너무 소중하고 어리기에 저 친구들에게 아픔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친구들이 너를 아프게 하고 멍들게 할 동안 내가 항상 옆에 있어 주겠다는 말이 있었고, 두 번째는, 생각이 많을수록 용기를 잃는다, 네가 생각한 게 맞는다고 생각하자 라는 말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이해하는 척하는 친구라고 느꼈고 다음은 나를 이용하려고 나의 약점을 잡기 위해 이런 좋은 말을 해주나 싶었고,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고마움이 되었다. 해보자는 나를 이용하려고도, 동정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내 미래를 위해서 내 상태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었다.
그런 감정을 나는 그저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 이야기를 해보자 에게 했을 때 해보자는 미안하다는 단어를 너무 쓰지 말라고 되레 나를 안심시켰다. 사람을 경계하는 나였고, 믿으면 손해 본다는 나의 가치관이 해보자 에게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는 해보자가 해준 이 말을 항상 되새기면서 생활을 하고,시험을 보고 그리고 시험에 결과를 기다리고, 시험의 결과에 쓰러지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시 해보자’를 외치며 밤을 끝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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