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가 달려오는 순간부터 나에게 달려와 등에 써져있는 글을 보여주는 순간까지 설렘과 떨림, 또 쑥스럽고 부끄러운 여러 감정들이 느껴졌고 그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체육대회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대회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미용과 2학년 대표로 축구를 나가게 됐다. 체육대회 전 내가 좋아하던 걔가 나에게 했던 말, “내가 만약 축구 골을 넣는다면 너한테 달려가서 세레머니 할게” 나는 그 말에 장난치지 말라고 부끄러우니까 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걔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걔가 축구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는 거 하나 없이 시간이 지나고 체육대회 당일이 됐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고 하게 된 나의 고등학교 체육대회는 나에게 큰 기대감을 줬고, 난 걔가 나에게 했던 말을 잊은채로 체육대회를 즐기고 있었다. 즐거운 체육대회의 끝을 달려갈 쯤, 미용과와 패션과의 축구경기가 시작됐다. 경기의 시작으로 난 걔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때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설마 골을 넣겠어? 하는 가벼운 떨림 외에는 나에게 큰 감정은 오지 않았다.
두 팀 모두 득점을 하지 못하던 중 상대팀, 패션과의 파울로 프리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의 주인공이 내가 좋아하던 걔였다. 여기서 골을 넣는다면 미용과 모두의 환호성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축구 경기에서도 넣기 힘든 프리킥을 고등학교 체육대회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던 찰나에 걔는 힘차게 축구공을 발로 찼다. 걔가 찬 축구공은 힘차게 허공 위로 올랐고 상대팀의 머리 위를 지나 골대 안에 정확히 골인했다.
축구공이 골대 안에 들어가던 순간 난 벅찬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에 축구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에겐 축구가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 순간을 시작으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야구를 더 좋아했던 그 때의 나, 하지만 이 날로부터 지금의 나는 축구를 더 좋아한다.
걔는 골인을 하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나에게 뛰어왔다. 축구 유니폼을 벗어 던지며 달려오는 걔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정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시간이 느리게, 천천히 지나갔다. 달려오는 걔의 옷 뒤에는 ‘**아 사랑해 결혼하자!’가 써져있었다. 걔가 달려와 뒤를 돌아 등에 써져있는 그 글을 본 나는 여태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설렘을 느꼈다. 이런 드라마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정도로 너무너무 떨렸다. 걔가 달려오는 순간,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지나갔고 내 심장박동수는 최대치를 찍을 정도였다. 걔가 달려와 등에 써져있는 글을 보여주는 순간, 등에 써져있는 그 글을 읽어보는 순간, 새빨개진 얼굴을 한 나는 웃으며 눈을 가렸고 부끄럽기도 설레기도 했다.
이 날로 걔는 나에게 새로운 감정을 보여줬고, 나의 첫사랑이 되었다. 나에게 첫사랑은 처음 한 사랑이 아닌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니까. 걔는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였다. 골을 넣으면 나에게 달려와 세레머니를 하겠다는 말을 지킨 걔로 인해서 그 날의 그 순간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 됐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그런 부끄러운 일을 용기있게 해내준 그 사람, 걔에게도 감사함을 느낀다. 걔였기에 해낼 수 있었고, 걔였기에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에 큰 경험과 추억, 나의 청춘이 되어줘서 고맙다. 또 모든 사람들이 평생을 살면서도 경험하지 못할, 느껴보지 못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게,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다. 남들이 보면 웃기고 오글거리는 일일 수도 있다. 지금 이걸 쓰는 나도 오글거리고 웃기기 때문에, 그럼에도 이 일을 다시 한 번 떠올려 글을 쓴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내 인생에서 이 순간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과 같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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