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인생의 시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 시간

by 라이팅 매니저 2025. 7. 10.
728x90
반응형

나도 너무 지치고 고된 하루를 보낸 날, 집에 돌아와 불을 모두 끄고 아무 소리 없는 방 안에 홀로 앉아있을 때가 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나만 남아있는 고요한 공간 속에서 노래를 틀고 허공을 바라본다. 그 순간은 슬픔도, 기쁨도, 걱정도 없는, 감정이 무너져 내린 듯한 정적이 감돈다. 나는 그렇게 어둠 속에 조용히 몸을 맡긴 채, 흩어진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곤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이 오히려 내면을 더 또렷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소제목 작은방 과 작은세상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는 바로 시인 윤동주 자신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윤동주는 하루 동안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냈다. 낮 동안 그는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하고 억업받은 상태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라도 잠깐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었던 그는 조용히 방에 들어와 불을 끄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고, 창문을 열어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들이기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윤동주는 실망하게 됩니다. 불을 꺼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고, 창문을 열어도 오히려 방에 공기들은 그가 낮 동안 피하고 싶었던 숨 막히는 바깥세상의 공기로 채워졌습니다. 윤동주에게 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답답함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나만의 작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깥세상의 공기는 창문을 통해 방 안까지 들어왔고, 윤동주는 그 사실을 깨달으며 허무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꼈던 것입니다.

결국 윤동주는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간,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소제목 불을 끈다는 것

세상으로부터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나는 이 시구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을 외면하듯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 장면이 너무도 익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치 시인이 나의 하루를 들여다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세상을 향한 문을 닫고 나만의 공간으로 돌아와 모든 빛을 꺼버리는 그 행위는 하루 동안 받은 상처와 피로, 외로움을 잠시 내려놓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나도 너무 지치고 고된 하루를 보낸 날, 집에 돌아와 불을 모두 끄고 아무 소리 없는 방 안에 홀로 앉아있을 때가 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나만 남아있는 고요한 공간 속에서 노래를 틀고 허공을 바라본다. 그 순간은 슬픔도, 기쁨도, 걱정도 없는, 감정이 무너져 내린 듯한 정적이 감돈다.

나는 그렇게 어둠 속에 조용히 몸을 맡긴 채, 흩어진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곤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이 오히려 내면을 더 또렷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구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삶의 한 조각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저 '불을 끈다'는 동작 하나에 담긴 깊은 공감과 위로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이 순간은 나를 지탱해주는 시간이다.

 

 

소제목 목표를 이룬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이 시구는 나에게 깊은 공감과 체험으로 다가왔다. 목표를 이룬다는 것은 곧 목표를 잃는다는 것이고 목표를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이유를 잃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오랜 시간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을 끝낸 날 평소처럼 집에 돌아와 조용히 씻고 밥을 먹었다. 기뻐해야 할 순간이었다. 내 실력 그대로를 보여주었고, 반년간 짐처럼 짊어지고 있던 부담을 내려놓을수 있었으며 더는 매일같이 잠을 줄여가며 연습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웠고 묘한 우울감이 밀려왔다.

그 우울함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분명 해방된 것이고, 성취한 것이지만 나는 오히려 어떤 방향도 없이 텅 비어버린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결국 방이라는 나만의 작은 세상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홀로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에서처럼 고된 낮을 뒤로 하고 불을 끄며 기분을 환기시키고 싶었지만,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은 무기력함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 공허함을 잊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는 동안 참고만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먹고 싶던 걸 마음껏 먹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내 안에 생긴 커다란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지치고 공허했다. 무언가를 해도 그 전처럼 즐겁지 않았고, 웃음은 피곤한 틈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그림자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목표라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목표는 나의 하루를 이끌고 의미를 만들어주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진 지금 나는 그 자리에 남겨진 공허함과 싸워야만 했다.

이 시가 나에게 유독 깊게 와닿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인은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방으로 돌아와 불을 끄지만 그 행위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 그리고 자신과의 대면임을 보여준다. 나 역시 그렇게 방에 들어와 어둠 속에 앉아, 나 자신과 대면하며 묻고 또 물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하루를 채워야 할까?”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목표에 의지해 있었는지를, 그리고 삶은 단지 무언가를 이루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조용히 곁에 머물러 주는 위로였다. 그래서 이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닌 나의 경험을 감싸주는 한 조각의 거울처럼 느껴졌다.

 

소제목 ‘70년후 나의 장례식에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 시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단순히 하루가 끝나고 방 안에 들어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같다고 느껴졌다.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힘든 인생을 살아오다가 더 이상은 의지도 남아 있지 않고, 버틸 힘도 바닥나서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누운 채 눈을 감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이.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언젠가 아주 먼 미래, 내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느꼈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이 짧은 시의 한 장면이 대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억지로 삶을 더 연장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미련을 두지도 않은 채, 스스로 불을 끄고 조용히 쉬러 가듯 떠나고 싶다.그리고 그건 단지 슬픈 이별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평온한 세계로 향하는 걸음일지도 모른다.살다 보면, 버티는 게 하루의 전부였던 날들이 있다.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인생이 된다. 그 안에는 후회도, 고마움도, 기쁨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살아간다는 자체가 너무 피로한 일처럼 느껴졌다.더는 불을 켜두지 않고, 세상의 낮을 끌어안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길 바랐다.그런 내 마음을 이 시는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나의 마지막 날에, 나를 기억하러 와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고된 인생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이승을 떠나 내가 원했던 나만의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날들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메시지를 함께 남기고 싶다.

 

소제목 천국에도 그림자는 진다
윤동주의 시 돌아와 보는 밤을 읽고 난 뒤,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한 곡이 떠나지 않았다. 바로 천국에도 그림자는 진다라는 노래였다. 시와 이 노래가 내용적으로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가사에서 윤동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되는 것도 아니고, 시의 배경이나 메시지를 그대로 담은 곡도 아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나는 이 두 작품이 정서적으로 어딘가 깊은 곳에서 닿아 있다고 느꼈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히 하루를 정리하는 장면이 아니라 끝없이 지쳐 있는 한 존재가 조용히 세상과 단절하고자 하는 순간이라는 걸 느꼈다. 윤동주가 말하는 좁은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더 이상 세상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진 사람이 겨우 도착한 마지막 안식처 같았다. ‘불을 끈다는 행위는 그저 조명을 끄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드는 감정의 소모를 잠시 멈추고 싶은 간절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것이 이 노래였다. “천국에도 그림자는 진다.”

얼핏 들으면 낭만적일 수도 있는 이 문장은 실은 천국이라는 완벽한 공간조차 완전할 수 없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어떤 형태로든 빛이 있다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 그 그림자는 우리가 피하려고 하고 외면하려고 해도 언제나 곁에 머물러 있다는 진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나는 그가 느꼈던 삶의 고단함과 동시에 놓지 않으려 했던 순수함이 이 노래의 정서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그는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키려 했고 끝없이 질문하고 고뇌하고 기록했다. 아마 그는 삶에서 천국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진실이 보장되고 말이 감시받지 않으며 존재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천국 같은 세상에서도 그림자는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낮의 연장인 불을 끄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윤동주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세계에서도 어쩌면 그림자는 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빛을 향해 몸을 틀 수 있다고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가 걸어온 길이 무의미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노래는 말한다.

완벽한 구원 같은 것은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고, 때로는 버티며 때로는 조용히 손을 놓는다고.

윤동주의 시가 말하지 않은 것을 이 노래가 대신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노래가 말하지 못한 것을 윤동주의 시가 조용히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가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끝자락에 조용히 흘러나오는 듯한 음악으로. 그가 살아 있던 시간 동안 들을 수 없었던 위로를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