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그토록 간절히 바랐는가
시에서 말하는 이는 현재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만났으면 하는 상황에 있으며 언젠가는 꼭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듯 하다
이 행동과 생각을 자신의 하숙방에서 도 희망하고 만나지 못해 그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몇 번이고 지나쳤지만 다시 한 번 누구를 기다리려 정거장의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시인의 관점에서는 희망과 사랑같이 고국의 독립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윤동주시인의 당시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일제강점기시기에 독립을 바라며 쓰고있던 시가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이 유추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간절함으로 인해 불안했고 그것을 이겨내려 담배를 태우고 있었으며 매일매일 소식을 들으려 가차운 언덕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을 것이고 방안에서 마저도 식민통치 이전을 그리워 하듯이 말한 것 같았다 마지막 문장를 통해서 이 마음과 정신이 현세에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과도 같았다
2. 나의바람도 그곳에 오래 남아있었으면...
시 내용 중 마지막 문장인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라는 문장 입니다
현재 젊음이라는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끝맺음과도 연관이 깊어보여 명대사로 고르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힘을 들여 끝을 낸 저를 지극정성으로 키워내었고 키워가는 중이신 어머니의 마지막에도 젊은 시절에 내가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라던가 젊은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거기 즉 저 자신의 마음 속에도 오래오래 잘 끝까지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더욱 명대사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장과 함께 어머니의 사진을 보게 된다면 주마등처럼 스쳐가게 되어서 어머니를 조금 더 뜻깊게 기억하는 계기가 되지않을 까 하는 생각을 통해 약간은 시원섭섭한 듯한 생각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3. 전혀 알 수 없었던 감정 그리고 아픔
제게는 이렇듯 어머니와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이나 마지막에 의미를 두고 있고요 이런 마지막의 경험이 친족에서 처음만은 아니였습니다 저의 진외증조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친가쪽에 애정은 없지만 어릴 때 까지만 했어도 별로 들었던 일도 없었기에 친가 외가 상관없이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아버지의 전화로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뵐 때만 했어도 연세는 많으셨지만 정정하셨기에 그래도 꽤나 길게 뵐 수 있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그런 소식이 들렸기에 당시에는 그렇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밖에 있던 형을 불러오고 부모님과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막상 그 곳에 가게 되었을 때는 담담 했습니다 도착하게 되니 실감이 나는 느낌으로 눈물이 나지도 않은채로 원래 난 이런가보다 누군가가 그렇게 펑펑 울며 좋은 분이셨으니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셨고 그말을 그저 그렇게 받아 들였으며 저렇게도 슬픈데 난 왜 여기서는 울지 못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내드리는 마음으로 인생을 보내고 있던 도중 중학교 때 도덕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뵈었던 분이였는데 저를 이리저리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셨고 학년 마지막에는 학생회장으로도 가게 해주셨던 분이셨지만 2학년이 아예 끝나 갈 때 즈음부턴가 편찮으시다는 얘기가 들렸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큰일은 아니시고 금방오신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3학년 2학기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으셨고 축제 직전 즈음에 뵐 수 있게 되었지만 걷기가 좀 불편하신 상태였고 힘도 거의 다 빠지셔서 되려 악화되신 상태셨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1학년 4월 11일에 부고 소식이 전해 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슬픔을 참고 2일 뒤에 같은 중학교를 나왔던 친구들을 모아서 장례식장에 찾아가게 되었고 앞에 서게 되니 눈물이 끝도없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약간 눈물이 일렁 거리기도 하고요 분명히 같은 죽이라는 결과임에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음에 외증조할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뵐걸 이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죽었을 때는 어느정도의 사람이 찾아오게 될까? 혹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어주긴할까? 저 자신에 대한 고민도 생긴 것 같습니다
4. 인내
시를 읽으며 관련된 것은 2개의 음악이 떠올랐습니다 음악의 제목은 시간을 견디면이고 가수는 MC THE MAX입니다 왜냐하면 시를 썼던 윤동주 시인의 당시 상황을 보게 된다면 연관이 지어 지며 어울렸던 노래 제목이며 가사또한 광복에 대한 열망과 대입이 되었기에 때문입니다 시에서도 나오듯이 좋은 소식 즉 광복의 소식을 기다렸던 윤동주 시인의 상황이 시간을 견딘다면 찾아오게 되는 것이 광복이라고 믿었을 것 같기에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음악이 있습니다 리암겔러거라는 가수의 For What It's Worth라는 곡입니다 윤동주 시인 뿐만이 아닌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이 고통을 보내던 시기에 일본 순사들 마저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몇의 일본인들은 그래도 미안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해당 노래의 가사 내부에도 I'm sorry for the hurt라는 가사가 너무나도 와닿았기 때문에 고르게 되었습니다
5.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
50년이 지나고 나서 자신을 돌아보면 제목과 같이 저의 어머니는 사랑스러운 추억이며 저의 어머니 또한 제가 사랑스러운 추억이기에 고르게 되었고 이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어머니가 저의 행복한 소식만을 기다리며 살았을 것 같았고 저 또한 어머니의 행복한 소식만을 바라며 살아 갈 것 같으며 이후에 돌아가시게 되먼 사랑처럼 그리워 할 것 같은 저의 예측적인 생각이 있기에 고르게 되었습니다
50년 후에 돌아가신 상황에는 저 자신이 갈피를 잡지도 못한 채로 방황할 것 같기에 그저 어머니와 함께했던 행복하고 즐거웠던 좋은 추억만을 가져 갔으면 하는 저 자신의 바람도 함께 있는 것 같기에 어머니 본인에게는 제목과 같이 사랑스러운 추억이라고 전해 졌으면 하는 저의 어머니를 향한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늘 형 한 명으로도 벅찼을 텐데 저 자신 조차 말을 잘 듣지 않았고 늘 속을 썩였다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6. 당신과 자주 함께 했던 추억
시 속의 나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며 그 사람으로 인해 매일같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다린다고 가정을 하게 되면 그 사람과는 연이 아주 깊거나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 기다리던 사람과 자주 먹었던 음식을 창작물로 만들기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기다리는 대상을 중요하거나 연이 깊은 사람중에 그토록 서성거렸고 희망과 사랑처럼 기다렸기에 연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과는 자주 함께 하며 먹었던 음식이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을 기다리며 자주 그 사람과 먹었던 음식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고르게 되었습니다
번외적으로 제가 어머니께 바치고 싶은 시였으며 어머니를 자주 떠올렸고 ‘시속의 나‘ 까지도 연이 깊었던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분셕얼 했숩나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어머니가 누구보다도 연이 깊었기에 자주 해주셨던 음식들로 한상차림을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전에 있던 추억을 50년후에도 상상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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