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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교사가 시간을 버는 수업

교실이 무너졌다. 그러자 광장이 열렸다. 학생중심 수업기획. 교사가 지치지 않는 수업기획. 기초.

by 라이팅 매니저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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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무너졌다. 아니, 학생들이 무너졌다. 좀 더 정확하게는, 학생들의 척추가 만성적으로 무너졌다. 수업을 시작하고 5분 만에 학생들은 고꾸라지는 제 몸을 이기지 못했다. 물리적인 현상이었다. 수면시간이 2-3시간을 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또한 정신적인 현상이었다. 더 이상 교실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칠판을 봐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 때문이었다. 접속하는 순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체험은 강렬했다. 그는 선택했고, 세계는 반응했으며, 그는 성장했다. 이 모든 것들이 눈으로 화려하게 확인되었다. 다들 그러하듯이, 그들도 언제나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그러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실의 주인공은 교사였다. 

 

  다음은 스마트폰이었다. 접속하는 순간, 그를 전 세계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는 체험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진촬영도, 영상제작도, 시와 소설, 시나리오나 웹툰까지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이미 그들의 손 안에 있었다. 재미있는 컨텐츠는 돈이 되었고, 큰 돈이 되었고, 그것은 결국 의미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였다. 놀랍게도, 이 공간에서는 재미가 의미도 만들었다. 교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실에서는 교과서와 진도가 의미를 결정했다. 재미는 안중에도 없었다.

 

  교사가 수업의 중심이며 교과서와 진도가 수업의 가장 중요한 질서였던 교실이,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점점 무너져 갔다. 그러나 교실을 무너뜨린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이제까지 그들에게 가장 든든한 뒷배였던 것이 그들을 배신했다. 그것은 입시, 놀랍게도 그것은 입시제도였다.  

 

3년간 학생들의 삶을 기록한 ‘학생부’와 ‘논술-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전형이 확대되었다.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수가 ‘전체 대학 입학생의 70%’에 이르렀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일반고에서는, 수시전형으로 진학한 학생의 수가 대학에 진학한 전체 학생 수의 90%’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수시전형은 일반고의 진학지도에서 학교의 역량을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이 되었다.  

 

수시전형을 이끄는 입학사정관들은 내신과 수능의 등급 외에, 학생에 대한 교사의 ‘개별적인 기록’을 요구했다. 문제는 그 기록이 ‘평가’가 아니라 ‘관찰’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교사에게 학생 개인의 자발성과 성실성, 창의성, 문제해결력, 리더쉽과 팔로우쉽 등을 관찰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첨부하여 기록으로 남겨주기를 바랐다. 평가는 입학사정관의 몫이었다. 그들은 교사에게 관찰을 원했다. 

 

교사에게 고단한 요구였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요구였다. 학생들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데에 일제식 강의는 비효율적이었다. 교사는 교실의 무대를 학생에게 넘겨야 했다. 학생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드러낼 동기와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교과서의 권위도 빛이 바래 갔다. 진도가 아니라 학생을 따라야 했다. 교사는 학생의 선택에 반응하며 함께 격려하고, 학생 개인의 성장을 도모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자발성’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재미가 있어야 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교실에 들어왔다. 곳곳에서 원망과 피로의 한탄이 들려왔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정말 교실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부터 시작이었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현저히 줄었다. 교사의 목소리가 낭랑하던 교실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가득 들어찼다. 학생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활동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창작하는 일에 학생들은 열광했고 그들의 기록은 책으로, 사진으로, 영상과 영화로 확대되었으며 그 결과물들은 때로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다. 그러다 돌아보니, 어느 새 그들 곁에 책이 쌓여갔다. 사용법이 간단하면서도 학생을 주인공으로 존중하고 학생의 다양한 취향을 모두 수용하면서도 학생들의 논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데에 책만한 것이 없었다. 교실이 무너지니 광장이 열리고 책장이 세워진 것이다. 

 

    

 

Ⅱ. 원칙 

1. 정확하기

정확하게 읽는 것,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시수업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다. 시는 ‘돌려 말하기’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기’이다. 아무리 섬세하게 사용한다 해도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논리, 사실과 진실들을 모두 전달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벅차오를 때가 있다. 그래서 보고 싶다거나, 그립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때가 있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그런 순간을 찾아서 언어의 한계와 언어의 틈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의 문으로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너였다가, 네가 아니었다가, 다시 너였다가... 산이 하나 쌓이고 다시 그 산이 하나 무너지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와 틈에 대한 그들의 도전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로 우리말의 영역은 쉼 없이 넓혀졌다. 

시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살피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고 그 틈을 탐험하는 그들의 날카로운 시도들을 함께 살펴보고 싶다. 그래서 시의 어느 한 날카로움이 자신의 삶에 정확히 닿아 있음을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교사가 지치지 않는 국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진행하기

교사에게 교육이 고역이 되는 순간, 그 교육은 멈춘다. 교사가 고역으로 느끼는 교육이 학생의 배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교사가 지치지 않는 한에서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이 진행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3. 학생의 배움이 수업의 중심이 되는 수업 기획하기

교사의 가르침은 학생의 배움으로 완성된다. 아니, 학생의 배움이 교사의 가르침의 시작이며 끝이다. 수업 중 교사의 활동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학생의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수업은 의미 없으며 적어도 비효율적이다. ‘진도’라는 명분과 ‘학생의 낮은 배움의 의지’라는 현실적 제약을 인정한다. 그러나 ‘학생의 배움 포기’라는 극한 상황이 일반화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학교와 교사의 존재 근거 자체를 잃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배움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학생의 배움의 의지를 돋을 수 있다. 그것이 ‘진도’라고 불려지는 교사만의 교육과정을 배움의 교육과정으로 회복시킬 것이다.   

 

Ⅲ. 사례

1. 학생, 책에 대해 질문하다.

질문게임수업. 첫 시간, 학생들은 교사가 복사해 온 청소년용 과학 도서의 한 챕터를 함께 읽었다. 두 번째 시간, 학생들은 자신이 읽은 부분에 대해 개인별로 2문제씩 모둠별로 8개의 문제와 정답을 만들고 문제의 중요도에 따라 별점을 매겼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문제를 만들어야 했다. 협의가 끝난 후 교사의 검토를 통과하면, 각 모둠에서 한 명의 학생이 일어나 교사가 지정한 다른 모둠으로 가서 자기 모둠에서 만든 문제를 냈다. 쵸코파이 따위의 과자 상품이 흥을 돋웠지만 본래 퀴즈게임이라는 형식이 갖고 있는 흥겨움이 학생들을 깨웠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저마다 낸 문제가 겹치는 일이 발생했다. 더구나 교사는 학생들이 문제를 만들기 전에, 잘 만든 학생들의 문제를 시험에 내겠다는 큰일 날 소리를 했다. 그리고 시험에 진짜로 학생들이 만든 문제들이 나와 버렸다. 심지어 어떤 학생의 질문 중 일부는 그의 학생부에 기록되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몰입도가 높아졌다. 오늘, 내가, 이곳에서 읽고 만든 질문이 곧바로 답을 찾고 중요도를 평가 받으며 수업의 중심이 되고 심지어 시험문제로 나올 수 있었다. 학생들이 책읽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2. 학생, 책으로 대화를 나누다.

독서대화 보고서 수업. 첫 시간, 학생들은 교사가 4권씩 마련한 15 종류의 만화책 중에서 모둠별로 협의하여 한 종을 택했다. 두 번째 시간, 학생들은 모둠별로 선택한 같은 책 네 권을 받아 각자 읽었다. 세 번째 시간,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대사, 궁금한 점 등을 정리하는 학습지를 개인별로 완성했다. 학습지가 모두 완성된 모둠부터 진행자, 노트북 서기, 보고서 작성자, 사진기사 등의 역할을 정하고 각자 만든 학습지에서 이야기 꺼리를 선정한 후 대화를 시작했다. 학기 초에 준비한 40만원짜리 노트북 10대가 모둠별로 한 대씩 지급되었다. 학생들의 대화가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기록되었다.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에도 그랬지만, 자신의 말이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기록된다는 것이 그 자체로 학생들을 흥분시켰다. A4 다섯 쪽 이상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이 학생들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같은 것을 보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서로 다른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 새 송곳처럼 하나로 꽤뚫어질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배웠다. 이것이 중요했다. 똑같은 질문도 교사가 제시하면 외면하던 학생들이 똑같은 질문인데 친구들이 하면 그 답을 찾으려고 달려들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3. 학생, 시를 영상으로 만들다.

시영상만들기수업. 첫 번째 시간. 학생들은 100여 편의 시 중에서 모둠별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한 편 고르고 시를 네 부분으로 나눈 후 자신이 맡은 부분을 8개의 장면으로 기획했다. 두 번째 시간 콘티를 완성한 모둠부터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시영상의 분량은 2분 내외이고 사진을 이어붙인 사진동영상을 권장하며 배경음악과 시구절 자막이 있어야 했다. 세 번째 시간은 예비시사회 시간이다. 유투브를 통해 학생들이 각자 편집해 온 시영상을 함께 감상했다. 학생의 의도와 열정을 한껏 칭찬하고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수정해 오도록 격려했다. 네 번째 시간은 시영상 축제. 학생들의 작품과 다른 반의 우수작을 함께 보며 소소한 간식을 나누며 시와 영상을 함께 즐겼다.

조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자신의 얼굴이, 친구들의 얼굴이 화면에 한 가득 나온다는 것이 그 자체로 수업에 재미와 의미와 긴장을 더했다. 교사가 강조한 것은 내내 한 가지였다. 시를 정확하게 전달할 것. 시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해, 보고싶어’ 따위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어떤 순간, 어떤 감정을 만났을 때, 그것을 ‘카페로 드나드는 모든 얼굴들이 너였다가, 니가 아니었다가, 다시 너였다가 산이 하나 무너지고 다시 산이 하나 쌓이는 그 시간동안’라는 말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결과물이 시이다. 학생들에게 정확함을 요구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정확함이 영상에 긴장을 더했다. 영상이 끝나면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시집을 빌려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만든 시영상은 유투브라는 영상의 바다에서 전세계를 항해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4. 학생, 서평을 쓰다.

소설 서평쓰기수업. 첫 번째 시간, 학생들은 교사가 제시한 책목록 중에서 한 권을 택하고 지정된 기간 안에 책을 구입했다. 두 번째 시간, 학생들은 자신이 구입한 책을 교실에 가져와 읽었다. 세 번째 시간, 학생들은 A4 한 장에 8개의 질문이 있는 학습지에서 6개의 질문을 선택하여 책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었다. 네 번째 시간, 학생들은 컴퓨터실로 이동하여 자신이 완성한 글감 6개에 대해 각각 A4 절반 이상의 분량으로 글을 써서 최종적으로 A4 3쪽 내외의 서평을 제출해야 했다. 좋은 서평에는 두 가지의 기준이 있었다. 첫째, 자신의 이야기가 전체 분량의 70% 이상일 것. 둘째, 두 살 어린 동생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며 사례가 풍부할 것.

학생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책을 매개로 학생들은 자신의 깊은 이야기들을 끌어 올렸다. 학교, 학원, 성적, 꿈, 진로 등의 진지하고 일반적인 이야기들 사이로, 왕따, 폭력, 성관계, 불륜, 가출, 자살 등의 외롭고 아픈 이야기들이 드러났다.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과 아이로 머물고 싶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더러 너무나 아픈 이야기가 발견되면 학생을 불러 상담을 진행했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나누는 한 시간 남짓의 대화였지만 학년말 평가에서 이 대화에 나섰던 학생들은 대부분 그 시간을 ‘후련함’으로 기억해 주었다.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상처를 관찰할 수 있었고 결국,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걸까... 부디 그러하길. 상처란 직면하여 치유하지 않으면 함정이 된다.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함정. 평가나 진학, 재미나 의미 이전에, 학생들이 자신의 상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빌었다. 아픈 아이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소설 서평쓰기 수업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학생들이 책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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