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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시 서평

우리의 삶은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 수 있는가

by 라이팅 매니저 2024.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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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말하는 이와 시인 모두 신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자신이 스스로의 기준으로 떳떳하지 못할 때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다.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듯 외부의 시련에 저항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으로 윤동주 시인의 결백(일종의 강박)성을 엿볼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에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 바란다는 것은 현재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 생각하는 것이지 않을까. 시인과 화자는 스스로에게 내거는 잣대가 엄격한 사람인 것 같다.

2연의 별과 나에게 주어진 길은 아마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제시한 떳떳하기 위한 삶을 말하는 것일 듯 싶다. 당시 시인의 삶을 미루어 봤을 때 화자에게 있어서 바람은 고통이며 밤은 암울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것이 윤동주에게는 일제의 탄압이었을 것이다.

밤에 별이 바람에 스친다는 것은 화자가 지향하는 삶이 암울한 현실에 가로막혀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겠다 말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대한일까 민족일까 자신의 신념일까. 아마 그 모두일 것이다. 시인은 일제의 억압과 탄압 앞에 무력한 자신이 참을 수 없게 괴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느꼈던 무기력에 대한 자기 책망과 암울했던 감정들이 잘 느껴지는 시라고 생각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첫 문장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었다. 나는 이것이 윤동주의 곧은 심성이 드러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죽는 날까지 하늘에 우러러, 신 앞에서 결백할 수 있는 삶을 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그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어렸을 적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가장 강렬했고 뇌리에 남은 문장이다. 당시 시인의 삶과 성정을 몰라도 감명 깊은 문장이었다. 윤동주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며 그가 바랐던 삶과 그가 살았던 삶과 그의 신념과 함께 읽히며 더욱 마음에 닿게 된 것 같다.

윤동주가 바라던 삶, 결백하고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는 삶. 나는 윤동주가 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시선으로 그의 삶은 그의 시에서 그가 느꼈던 수많은 부끄러움들, 자괴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위의 문장이 내게 가장 감명 깊게 다가온 것이다.

시의 끝부분에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 다짐하는 부분에서 위의 시구가 더 와닿게 되는 것 같다. 시인과 화자의 올곧길 바라는 마음을 시의 첫 문장에서 보여주는 인상깊은 연출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 수 있는가

시를 읽으며 항상 영화 동주가 떠올랐다. 영화 후반부에 윤동주 시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서시의 나래이션이 나오던 장면이 아른거렸다. 아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란다는 문장 때문에 시인의 죽음을 보여주며 함께 나온 것 같은데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모습 위로 서시의 잔잔한 나래이션이 나오는 연출이 마치 그의 인생과 신념을 압축해서 보여준 느낌이었다.

우리는 현재 일제로부터 독립하였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 스스로의 삶을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 수 있는가. 정말 우리의 인생의 모든 선택을 자의로만 하고 있는가. 정말 시인의 떳떳한 삶을 방해하는 방해물은 일제 뿐이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가족, 친구, 친척, 선생님 등등 당시 시인과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고 많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지속하는 한 그들의 시선 속에서, 조언과 충고를 빙자한 은근한 회유와 상대의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 시선 안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타의로 결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살면서 하는 수많은 결정에 우리가 조언을 구한 수많은 이들의 의견이 섞이고 묻었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이야기 해줬다 한들 어찌됐든 우리의 마음은 아니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약간의 답정너 마인드를 장착해야 할 것 같다. 남들의 의견은 그저 참고로. 나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용도로 사용하며 그 과정에서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윤동주 시인을 본받아 스스로와 하늘에 떳떳하길 지향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삶이 되길 바란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나의 삶에서 죽음을 바라본 경험이 몇이나 있을까. 그 죽음을 바라보며 신 앞에 고해한 경험은 또 몇이나 있을까. 아마 누군가가 보기엔 한번도 없을 수도 있고 누군가 보기엔 수없이 많을 수도 있다.

먼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의 지난 삶을 반성한 적이 있는가 하면 아마도 없을 것이다.

생사를 오갈만큼 크게 아프거나 다쳤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갑자기 심장이 아팠을 때는 병원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언제든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그때 난 내 인생을 한번 정리하고 싶어졌다. 내 삶이 후회와 미련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언제 어디서든, 설령 당장 10초 뒤라도 정말 아주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도 그래 이정도면 괜찮았지 싶은 삶을 살고싶어졌다.

그래서 아주 과감한 선택을 해봤었다. 마치 내일이 없을 사람처럼. 당장 앞으로 1년만 살아갈 시한부처럼. 난 당연히 그 선택을 미래의 내가 후회할거라 생각했었으나 의외로 난 그다지 후회하지 않는다. 그땐 그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먼 미래의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유구한 습관이었다. 왜인진 모르겠으나 어렸을 때부터 난 사람은 살아가고 있다기보단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간들이 시한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난 그렇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때 막상 당장 죽는다 생각하니 이것저것 아쉬운게 많아졌다. 그래서 적어도 그때 그러지 말걸 하는 후회는 없는 삶을 살고싶어졌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롭지 않은 삶을 살고싶어졌다.

때문에 난 별, 즉 나의 추구하는 삶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언제든 죽어가고 있는 나의 삶을 믿어주고 나의 결정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내가 서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삶이, 그 삶의 모토가 서시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현재 내가 지향하는 삶은 후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때론 후회하고 벅찰지라도 과감한 선택을 망설이지 말 것. 이것이 나의 삶의 모토이다. 내가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나의 선택을 믿고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런 선택들로 인해 때로 실패하고 포기하게 되더라도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내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봤을 때 떳떳한 삶은 그것이다. 신 앞에서 그리고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정말 떳떳한 삶을 산다는 것은 후회와 미련이 없는 삶이라 생각한다.

물론 20년 후, 사회에 몸 담은 내가 이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안정적으로 살길 바랄 것이고 과감한 결정은 되도록 기피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이미 미련없기 위하여 한 선택으로 크게 낭패를 보아 후회 중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길 바라는 나의 이 마음만은 전해지길 바란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서시와 관련된 작품으로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를 떠올렸다. 서시에서는 간접적이고 비유적인 시어들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비통을 표현했다면 쉽게 쓰여진 시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서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롭다 말한 것처럼 쉽게 쓰여진 시에서는 시인이란 슬픈 천명, 잃어버리고, 홀로 침전, 부끄러운 일이다 등 확고하게 본인의 무력감을 표현하고 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이 시의 화자 역시 서시의 화자처럼 자신에게 들이미는 잣대가 엄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서 시인의 일관적인 태도가 인상적이다.

나는 윤동주의 시에서 항상 괴롭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마지막엔 결국 희망을 다짐하고 마음을 굳게 먹는 모습을 좋아한다. 서시와 쉽게 쓰여진 시에서도 위에서처럼 고통스러워하고 무력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겠다 말하고 자기 자신에게 악수를 건네며 결의를 다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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