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니 불은 다 꺼져있었고 밥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방에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었다. sns를 켜자마자 껐다. 나와 다르게 너무나 잘 살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그들을 통해 만족감을 얻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다들 자신의 행복을 찾아 잘 사는데 나 혼자만 남겨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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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나는 혼자남았다
이 시에 나오는 ‘나’는 과거의 나였고 현재의 나며 아마 미래의 나일수도 있다.
어릴때의 나는 그저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해가 져도 그저 마음 편히 놀았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을 알차게 살았다. 그러나 점점 숫자가 바뀌어가고 동경하던 어른들의 모습에 가까워 질수록 더 이상 그때처럼 지낼 순 없었다. 모든 일에는 현실이라는 문제가 겹쳐들어왔고 난 점점 순수했던 그때의 마음을 잃은 텅 빈 몸을 이끌고 다니게 되었다.
어제도 나는 터덜터덜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오니 불은 다 꺼져있었고 밥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방에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었다. sns를 켜자마자 껐다. 나와 다르게 너무나 잘 살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그들을 통해 만족감을 얻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다들 자신의 행복을 찾아 잘 사는데 나 혼자만 남겨진 느낌.
이 시의 나도 그럴 것이다. 이 주인공도 낮에는 공부든 교우관계든 부단한 노력을 하였겠지. 그러나 모종의 이유든 세상의 억까든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태양빛 아래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해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내 방으로 갔지만 그 방에도 태양빛은 들어왔다. 내 보금자리에서도 햇빛아래 무력감을 본 이 시 속 주인공은 마침내 불을 끄고 어두운 세상에 혼자 남았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 자기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어쩌면 과거의 너,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되지않는 현실에 무력해진 것이고 이 시 속 주인공도 무슨 일이 있었겠지. 남이 보기엔 축축하고 어둡기 짝이없는 시지만 우리한테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가슴이 아픈 시이지 않을까
태양 아래의 내가 싫다
이 시에서 가장 내 맘에 잘 와닿는 구절은 ‘불은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풉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라는 구절이다. 사람이 한 방향만 보면 좋겠지만 신은 사람에게 주변을 살피는 능력을 주었다. 그 능력은 때로는 좋을 때도 있다. 주변인들 더 너머의 사람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능력은 양면을 띠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다는건 자연스레 나와 그 사람을 비교하게 된다. 동경심은 부러움이 되고 부러움은 나에 대한 자책감 혹은 열등감으로 변해간다. 같은 태양 아래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는 햇빛을 온전히 받아 빛나지만 그들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거나 묻혀가는 일이 태반이다.
나는 노력을 하지만 저들을 이길 순 없었다. 빛 아래 사정없이 보여지는 민낯에 지쳐 불을 끄고 산지가 꽤 오래되었다. 빛과 달리 어둠은 모두를 평등하게 검게 만들어준다. 빛에 드러나는 내가 싫어 나는 나 자신을 오랫동안 좁은 방에 스스로 갇혔다. 바깥이 두려워 나가기가 싫었으니까.
이 시 속 주인공은 자신을 방에 가두었지만 이런 구절도 있다.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어야 할 텐데’ 이 시속 주인공도 나처럼 나가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다시 나아가고 싶어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듯한 구절이 뒤에 표현된다. 나는 아직 이 방에 갇혀있지만 너는 이 방에서 꼭 나가 너가 원하던 행복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게 물질이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말이다.
검게살기
이 시와 같은 경험을 아마 중2 말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시험이든 수행이든 신경 안쓰고 마음맞는 친구들과 놀았으니까. 뭘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어릴 때 나는 그냥 놀았으니까. 그러다가 전학을 가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나는 처음엔 적응을 못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애들이 그저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자존감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1에 들어오고 나니 조금은 편해졌지만 이젠 다른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남들은 본인의 행복의 방향을 찾고 실행중이라는 것이였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려고 노력한다는 그 말과 행동이 너무 멋지고 동경했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나만의 행복을 찾으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잘 되지는 않았고 끝내 상처를 크게받고 좌절했다. 지금 다시 도전하려해도 무섭고 손을 대기가 싫다.
뭐랄까 겁나 크고 넓은 도로에 창피하게 돌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나 크게 다쳐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느낌. 나를 일으켜 주거나 도움을 주는 이는 없었다. 그저 본인의 행복과 함께 웃으며 지나가거나 행복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사람들 등등. 다들 그랬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내가 그때 느끼는 감정은 남들을 향한 부러움도 질투심도 아니였다.
답을 알고있는 너에게
이 글을 너에게 보내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사실 난 무슨 일이든 늘 정답을 알고 있다. 어ᄄᅠᇂ게 해야할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든 그로인한 후폭풍 주변인들의 시선 등에 너무 신경쓴 나머지 내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였다. 낮에는 남들에 맞춰 움직이지만 집에오면 나를 움직일 사람이 없는 나로 돌아왔다. 그러면 늘 당황했다. 내가 왜 움직이지 않지? 나 낮에는 잘만 움직였잖아 왜그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를 꾸미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것에 중독되면 점점 나를 잃어간다.
테세우스의 배라고 알지 않나 너도. 나를 다른 것으로 끼우고 재조립하고 하다보면 점점 나는 하나도 남지 않게된다. 나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존재가 된다. 이 이론에서 배를 다시 재조립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한번 바뀌면 재조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왔지만 돌아와보면 그저 주변인들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내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어떻게 해야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래버리면 내가 쌓아온 것들이나 주변인들이 나를 곱게 보진 않을 것 같다. 그게 지금 나는 무섭다. 사실 미래의 나에게 걸고있긴 하다. 그러면 미래의 내가 그러겠지. 에라이 이놈아 나도 너인데 나라고 다르겠니 그저 열심히 살며 자기자신을 잃지 마라는 지금의 나도 알고있는 답을 말하겠지. 나도안다 그정도야. 실행에 옮기는 중이기도 하고.
나도 이 좁고 어두운 방에서 나가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찾으면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겠지. 내가 다행인게 위에서 서술했듯 답은 알고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천천히 실행하면 20년 후의 너는 이 순간을 인생의 변환점이라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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